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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金正浩 19520327 ~ 19851129
남, 전라남도 광주 (한국), 가수, 작곡가, 작사가

작성일 19-04-23 22:50 358회 0건

" (하얀나비)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나비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



약력
김정호(1952년 3월 27일 ~ 1985년11월 29일)는 대한민국의 가수, 송라이터이다.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에 사월과 오월의 3기 멤버로 활약했고, 어니언스의 많은 노래를 작곡, 작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73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이름 모를 소녀〉가 히트하면서부터이다.

● 학력
광주수창초등학교 (전학) → 서울교동초등학교 (졸업)
대동중학교
성동고등학교

● 대표곡
〈이름 모를 소녀〉〈하얀 나비〉〈나그네〉〈인생〉〈날이 갈수록〉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님〉

● 그 외 작곡, 작사한 노래
〈작은새〉〈사랑의 진실〉〈잊으리라〉〈저별과 달을〉〈외길〉〈빗속을 둘이서〉

외가는 그야말로 국악 집안이라고 할만큼 후덜덜한 집안이었다. 그보다 오래 생존했던 모친은 물론, 그의 외조부가 판소리 명창이었는데, 일제 시대, 열사가로 유명했던 박동실이 바로 김정호의 외조부가 된다. 박동실로 말할 것 같으면, 인간문화재 김소희, 한승호, 한애순 등을 길러낸 희대의 대가이며, 명고수 김돋준이 또 그 밑에서 소리를 배웠을 정도이며, 그 자신이 김채만재의 소리를 했던 만큼, 후일 정정렬의 서편 신제 계보와 정응민의 보성제 계보와는 다른 서편 고제 계보의 전승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인물이다. 외가의 5촌 아저씨는 국립국악원 아쟁 수석단원을 역임한 박종선이다.[2] [3] 박종선은 현재도 생존하여 활발하게 공연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일섭에게서 아쟁을 배워 독자적인 유파를 이루었는데, 그의 유파는 현재 판소리 명창 김일구가 주도하는 김일구류와 함께 아쟁 연주의 양대산맥으로 꼽힐 정도다. 이 정도면 국악계의 성골 외가를 타고 난 셈.

하지만 이때만 해도 국악은 물론이요 모든 음악을 하는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받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는 당연히 아들이 다른 길을 가기를 원했었다고 한다. 김정호가 6살 되던 해에 국악에 관심을 보이자 집안에 있던 모든 국악기를 내다 버렸을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적으로 타고난 재능은 어쩔수 없는지, 김정호는 결국 학교도 때려치고 서울 우이동에 틀어박혀서 기타를 붙들고 살았다고 한다. 뛰어난 음악 감각 덕인지 빨리 기타를 익혔고 이후 미8군 무대에 서던 이상일의 밑에서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 이때 만난 친구가 어니언스로 유명한 임창제. 김정호는 어니언스로 데뷔하는 임창제를 위해서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들을 선물로 주었을 정도였다.

이때 김정호가 준 곡들은 "사랑의 진실", "작은 새"로 이 곡들은 먼저 임창제의 노래로 발표되었다가 히트를 치게 된 뒤에 임창제는 이 곡의 실제 창작자가 김정호라는 것을 밝혔고 김정호는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니언스의 히트곡들을 실제로 만든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1973년,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임창제의 추천으로 당시 TBC의 패티김 스페셜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게스트로 함께 나온 신인가수가 바로 조용필이었다.

이후 인기정상의 가수로 잘나가던 김정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1975년에 일어난 "대마초 파동"이었다. 친구인 어니언스의 임창제 뿐만 아니라 김정호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었고 출연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사실상 음악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대마초[5] 파동에 연루된 다른 가수들은 1979년에 해금조치를 받은 이후로 활동을 재개할수 있었지만 해금조치를 받은 김정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처맞았다든지.

실은 이때에 김정호는 파란많은 일들을 겪고 있었다. 방위병으로 소집을 받았지만 지방공연을 하는 친구를 따라가는 바람에 입영날짜에 입영을 못해서 탈영병으로 영창에 있다가 겨우 나와서 군복무를 마쳤지만 제대하던 때에 호되게 앓은 감기 이후로 건강이 나빠졌다. 진단 결과 폐결핵의 진단을 받은것 때문에 김정호는 해금조치 이후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고.

80년에 오랜만에 앨범 "인생"을 냈지만 폐결핵 증세가 악화되어 인천의 요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충분한 요양을 취하면서 적어도 1년 이상은 치료해야 한다고 했지만 김정호는 결국 4개월 만에 요양원을 뛰쳐나와 음악에 몰두했다.

1983년, 김정호는 새 앨범 "님"을 내놓았다. 김정호의 유작이 돼버린 이 앨범은 김정호의 건강때문에 진척 속도가 매우 더뎠다고 한다. 숨이 차서 한소절을 녹음하고 휴식한 뒤에 다시 녹음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 탓에 무려 5개월이나 걸려서 겨우 녹음을 마칠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김정호는 유난히 꽹과리를 붙들고 새 앨범을 만드는것 보다 꽹과리를 두들기는데 더 열중했는데 이런 한서린 감성이 "님"에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결국 악화된 건강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1985년 11월 29일에 "내 죽거든 앞이 보이는 넓적한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33살의 나이에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https://namu.wiki/w/%EA%B9%80%EC%A0%95%ED%98%B8(%EA%B0%80%EC%88%98)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A0%95%ED%98%B8_(%EA%B0%80%EC%88%98)
출처: YouTube (김정호 & 노래 모음)
https://www.youtube.com/watch?v=BwLs8LyYl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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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선배님들의 묘비명누구나 지구에 왔다가 한동안 머물고 다시 돌아갑니다. 먼저 가신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묘비명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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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stand for you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해 또 한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인파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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