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선배님들의 고귀한 가르침을 배우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하세요. 회원가입  로그인

지석영 池錫永 18550515 ~ 19350201
남, 서울 종로구 (한국), 의학자, 국어학자

작성일 20-03-01 18:48 249회 0건

" 우두 보급의 선구자이며 의학교육자, 한글 전용을 제창한 사회,경제,문화의 각 영역에
선각자, 우리 가족에게 먼저 실험해 보아야 안심하고 쓸수 있지 않겠느냐
(1880년 가족에게 우두를 접종하면서) "



약력
지석영은 조선말기 문신이자 한의사, 한글 학자로서, 자는 공윤(公胤), 아호는 송촌(松村), 본관은 충주이다. 그는 1883년(고종 20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掌令), 형조 참의(刑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종두법의 하나인 우두법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 생애
1855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지익룡은 근교에 한약과 침으로 이름난 유의였다. 어려서 부터 의학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고, 특히 일찍부터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 의학서의 번역본을 많이 읽었고,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법(우두 접종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76년 수신사 자격으로 일본을 다녀온 역시 명의로 칭송이 자자하던 스승 박영선(朴永善)에게서 《종두귀감》을 얻어 보고 감명을 받았고, 1879년 10월 부산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생의원에서 일본인 의사에게서 두 달 간 우두법을 배웠다. 그해 겨울 충청북도 충주시 덕산면에서 최초로 40여 명에게 우두를 시술하였다. 서울에는 종두장을 설치하였다.

1880년 2차 수신사 김홍집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우두종계소(牛痘種繼所)에서 두묘의 제조법을 배우고 두묘 50병을 얻어서 돌아와 종두법을 보급하기에 힘썼다.

1883년(고종 20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 사헌부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고, 1887년 공가(貢價)와 화폐 문제에 대하여 상소하였다. 1885년 《우두신설》을 저술하였다.
1890년대 후반에는 독립협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고 1894년에는 김홍집에 의해 토포사(討捕使)로 동학군 토벌에 참여하였다.
1894년 형조 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었고,1895년 동래부 관찰사(東萊府觀察使)가 되었다.
1896년 우두법의 보급에 공헌하였으며, 1899년 경성 의학교가 세워진 이후로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1907년 통감부에서 의학교를 폐지하고 1908년 대한의원의육부(大韓醫院醫育部)로 개편할 때 학감이 되었으나 한일합방 후(1910년)에 사직하였다.

이후에는 (한방)소아과를 특히 주요 진료를 하였고, 1915년에는 전국조선의생대회(全國朝鮮醫生大會. 현 한의사협회의 전신)가 열리고 회장을 맡는다. 일제는 보안법 1조로 조선 의생회의 해산을 명하고 관계자인 지석영 선생을 필두로 김성기, 최동섭, 경도학, 장기학, 윤용배, 조병근, 박인서 등 의생들을 종로경찰서로 초취하여 금후 다시는 이와 같은 회를 설립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게 한다. 그리고 1916년 조선의생회는 일제의 압박에 의해 해체되고 만다.

지석영은 나라의 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여 1905년에는 〈신정국문〉 6개조를 고종에게 상소하여 공포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여러 외래 도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의 우수성과 중요성을 자각하여 한국어의 발전과 보급에도 노력하였다. 지석영은 학부 안에 국문 연구소를 설치하게 하였으며, 1908년에는 국문 연구소 위원이 되었다. 또한 1909년에는 한자를 국어로 풀이한 《자전석요》를 간행하여 한자 해석의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 평가
조선의 종두법 시행의 선구자로, 종두에 대한 알기 쉬운 서적을 저술하여 의학 발전에 기여하였고, 천연두가 유행할 때마다 우두 종법을 실시하여 병에 걸린 이들을 구제하였다. 또한, 한글 보급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팔괘장과 태극장을 받았다.
● 기타
지석영의 부친 지익룡(池翼龍)은 양반이라 개업은 하지 않았지만 한의학에 정통했고, 지석영의 장남 지성주는 1919년 경성의전(내과 전공)을 나온 이후 개업했는데 1927년 및 1928년 동아일보에 독자를 위한 의학 관련 기사를 실을 정도로 장안의 명의로 소문났다. 그의 장남 지홍창(池弘昌)은 서울의대 박사로 군의관을 거쳐 박정희전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바 있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C%84%9D%EC%98%81
출처: 좋은터 길라잡이(송촌 지석영의 묘)
http://blog.daum.net/yacho2011/1822
  • Twitter
  • Facebook
  • Google+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구선배님들의 묘비명누구나 지구에 왔다가 한동안 머물고 다시 돌아갑니다. 먼저 가신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묘비명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TOTAL 240 건, 1 페이지

검색



Here I stand for you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해 또 한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인파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0
1,733

0
1,572

0
1,572

0
1,541

0
1,484

0
1,328

0
1,152

0
1,126





HOME 서비스소개 지구선배님들의 묘비명 나의 묘비명 지마인게시판 회원게시판 회원가입
지구선배님들의 고귀한 가르침을 배우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하세요.
회원가입  로그인
Copyright©2018 myepitaph.net All Rights Reserved.  MANAGER LOGIN  제작: FREEHOME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