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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IMPERATOR CÆSAR DIVI FILIVS AVGVSTVS -0630923 ~ 00140819
남, 로마공화정 로마 (이탈리아), 황제

작성일 19-03-31 14:41 1,984회 0건

" 연극은 모두 끝났다(이루어졌다) 박수를 쳐라  Acta est fabula, plaudite. "



약력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ÆSAR DIVI FILIVS AVGVSTVS, 기원전 63년 9월 23일 ~ 서기 14년 8월 19일)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7년 ~ 서기 14년)이다. 또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초대 황제이기도 하다.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Gaius Octavius Thurinus)였으나, 카이사르의 양자로 입적된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라틴어: CAIVS IVLIVS CÆSAR OCTAVIANVS)로 불렸다. 기원전 44년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외할머니 율리아 카이사리스의 남동생이자 자신의 외종조부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유언장에 따라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그 후계자가 되었다.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군사 정권인 제2차 삼두 정치를 열었다. 삼두 정치를 행한 집정관의 한 사람으로서 옥타비아누스는 효과적으로 로마와 속주를 지배하였고, 세력을 모아 히르티우스와 판사가 죽은 뒤 집정관에 재선되었다. 이후 제2차 삼두 정치도 깨지는데 다른 집정관이었던 레피두스는 유배되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진 뒤 자살하였다.

제2차 삼두 정치의 붕괴 후 옥타비아누스는 대외적으로 로마 공화정을 부활시키고 정부에 관한 권한은 로마 원로원에게 주었으나, 사실상 권력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일한 통치자가 다스리지만 대외적으로는 공화국 형태인 정치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껍데기만 공화국인 이 나라는 훗날 로마 제국으로 불린다. 황제권은 옥타비아누스 이전에 로마를 통치했던 카이사르와 술라의 독재권과는 전혀 달랐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로부터 “독재권을 부여받았지만” 거절하였다. 법에 따르면 ‘존엄자’(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은 평생 동안 권력을 가지도록 하였고 “호민관 권한”(tribunitia potestas)을 가졌으며 기원전 23년까지 집정관을 역임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재정적인 성공과 원정에서 얻은 물자, 제국 전체에 걸쳐 맺은 여러 피호 관계(clientela), 군인과 재향 군인의 충성, 원로원에서 부여한 여러 권한과 명예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다.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로마의 정예병 로마 군단 다수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원로원에게 군사적인 위협이 되어 원로원의 결정을 억압하였고,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여 원로원의 정적들을 제거하여 원로원이 자신에 복종하게끔 하였다.

아우구스투스의 통치는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계속되는 변방에서의 전쟁과 황위를 둘러싼 1년의 내전(기원후 69년)에도 불구하고, 지중해 세계는 두 세기가 넘게 평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영토를 넓혔으며 제국의 국경과 동맹국을 보호하였고 파르티아와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는 로마의 조세 체계를 개선하였고 파발을 위해 육로 교통망을 구축하였으며 상비군과 소수의 해군 그리고 황제의 친위대인 로마 근위대를 창설하였다. 또한 로마에 경찰청과 소방청을 설치하였고 로마 시의 상당 부분을 재개발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죽기 전에 자신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은 《아우구스투스 업적록》로 불리며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서기 14년 그가 죽은 직후, 원로원과 민회는 아우구스투스를 신으로 선포하였고 로마인들의 숭배를 받았다.[5]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이 그의 황제명인 ‘아우구스투스’와 ‘카이사르’를 이름으로 썼다. 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여섯 번째 달"(Sextilis)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꾸어 불렀다. 그의 황위는 의붓아들이자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물려받았다.

● 죽음과 후계 문제
기원전 23년의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가 발각되고, 건강이 크게 악화되자 아우구스투스는 후계자 선정이라는 화급한 문제에 관심을 쏟게 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치 체제의 안정을 위해 후계자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이를 대중에게 알리려 하였다. 로마의 시민들, 특히 원로원 계급이 갖고 있는 군주제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를 추진한다. 기원전 25년에 아우구스투스는 누나의 아들인 마르켈루스와 자신의 딸인 율리아를 결혼시켰다. 하지만 마르켈루스는 기원전 23년에 20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16살의 나이에 미망인이 된 율리아를 아우구스투스는 아그리파와 혼인시켰다. 아그리파 부부는 아들 셋, 딸 둘, 총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얼마 후, 아그리파는 5년 기한으로 전권을 부여받아 제국의 동방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아우구스투스만 가지고 있었던 “호민관 특권”도 부여받았다.

아우구스투스는 외손자인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루키우스 카이사르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양자로 삼는다. 이 두 사람은 아우구스투스의 배려로 기원전 5년과 기원전 2년부터 정치적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리비아가 데려온 의붓아들인 티베리우스와 드루수스 형제도 아꼈다. 드루수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조카인 안토니아와 결혼했으며, 기원전 12년에 아그리파가 죽고 나서는 티베리우스 부부를 이혼시킨 후 티베리우스를 미망인이 된 율리아와 결혼시켰다. 하지만 드루수스는 기원전 9년에 게르마니아에서 사망하고,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6년부터 로마 제국의 통치를 분담하였지만 얼마 후 로도스 섬으로 은퇴해 버린다.

서기 2년과 4년에 루키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가 차례로 요절하였다. 서기 4년에 아우구스투스는 티베리우스와 아그리파 포스투무스를 양자로 맞아들였다. 티베리우스는 5년 기한의 호민관 특권을 부여받았고, 조카인 게르마니쿠스를 양자로 맞아들였다. 티베리우스는 게르마니아 평정과 일리리쿰, 달마티아 반란을 진압하였고, 게르마니쿠스는 그 밑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는다. 하지만 아그리파 포스투무스는 방만한 행실로 인해 7년에 추방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아그리파 포스투무스를 후계자로 삼을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티베리우스는 13년에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모든 특권을 부여받는다.

14년 8월 19일에 아우구스투스는 놀라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죽기 전에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자 티베리우스를 소환해 밀담을 나누었다. 얼마 후, 황후 리비아의 품에 안긴 채 평온하고 조용하게 숨을 거두었다. 티베리우스는 아들인 드루수스와 함께 아우구스투스의 추모 연설을 하였다. 이후 마르스 광장을 지나 아우구스투스 영묘 앞 광장에서 유해를 화장하였고, 영묘에 묻혔다. 얼마 후 원로원은 아우구스투스를 신격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9A%B0%EA%B5%AC%EC%8A%A4%ED%88%AC%EC%8A%A4
출처: Lawdeep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
http://www.lawdeep.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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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선배님들의 묘비명누구나 지구에 왔다가 한동안 머물고 다시 돌아갑니다. 먼저 가신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묘비명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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